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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의 방


 

 

우리가 사는 찬디가르란 도시는 참 희한한 곳이다. 경제적으로는 인도에서 손꼽히게 부자인 동네이면서도 (고급관료부터 인근 펀잡, 하리야나 지역의 대지주들이 다 모여 사는 곳이니) 정신적으로는 무지 보수적이고 봉건적인 요소가 많은 곳이라는 것을 이년 동안 살면서 알게 되었다. 그것은 봄베이나 델리처럼 수많은 부자들과 그보다 몇 배는 많은 가난한 사람이 어울려 살지만 어느 정도의 혼잡스럽지만 자유로운 요소를 갖추고 있는 대도시와는 다른 점이기도 하다. 도심의 중심가에 가면 정신이 벙 찔 정도로 호화로운 차림새와 으리으리한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만 글쎄 어딘지 촌스럽고 갑갑한 느낌....봄베이에서 나고 자랐지만 찬디가르의 대지주의 아들과 결혼해 이곳에 살고 있는 나의 친구 나바즈도 그와 똑같은 말을 했었다. 알고 봤더니 아프카니스탄이나 파키스탄과 같은 심한 종교적 원리주의자들이 많은 나라에서나 일어나곤 하는 명예 살인율이 인도 내에서 가장 높은 곳도 인근 하리야나와 펀잡이란다. 암튼 좀 뻥을 치자면 이틀에 한번 꼴로 카스트나 종교가 다른 두 남녀가 사랑의 도피행각을 하다가 붙잡혀 마을의 집정관들에게 (현대법과는 상관없이 공동체의 법규에 따라 집행하는데 판차야트(panchayat) 제도라고 부른다.) 살해당하거나 그 집안의 형제 부모에게 목숨을 잃는 기사가 신문에 뜨곤 한다. (사실 온갖 테러와 살인사건이 아침마다 신문 일면을 도배하는 이 동네 신문, 아이들의 정서에 심하게 안 좋다. 전에 봄베이 테러 때에는 폭탄에 짓이겨진 시체들이 잔뜩 깔려 있는 신문 일면을 들고 오면서 엄마, 이게 뭐야 하는 레아 때문에 뒤늦게 기겁을 했었다. 그래서 가끔은 레아의 전담인 아래층에서 신문 가지고 오기도 시키기 겁난다.)

이 동네 여자들 중 차림새는 블링블링하지만 어쩐지 봄베이 도시 여자들처럼 당차고 자기 주장이 없는 기냥 매가리 없는 속물들만 많은 게 백 배는 이해가 된다.

 

애고, 학교 이야기를 하려다가 또 옆길로 새고 말았다...암튼 그런 곳에서 레아가 다니는 코베다(coveda)를 만난 것은 정말로 큰 행운이었다. 레아는 (전에도 말했지만)covada 바로 옆에 붙어 있던 유로 키즈란 유치원을 일년 가까이 다녔었는데 뭐 이런저런 불만이 많았었다. 그러다 어찌어찌 알게 된 coveda, 알고 봤더니 남인도의 오로빌에서 오래 지낸 이 도시의 건축가 제스프리와 역시 남쪽에서 푸른 산이라는 대안학교를 꾸리다가 이곳으로 온 비제이가 손을 잡고 만든 지 얼마 안 되는 학교 였던 거다. 코베다란 베다의 철학에 따라 가장 자유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깨닫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실현하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으로 출발했다는 학교이다. 하지만 돈은 많지만 정신적으로 물신 숭배와 성공지향적인 인도 상류층들로 가득 찬 찬디가르에서 돈 안되고 성공도 역시 보장되지 않는 대안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겠다는 학부모가 몇이나 되겠는가.

미국에서 살다가 오르빌에 들어와 공동체 경험을 오래했던 제스프리가 남편의 터전인 이곳에 정착하면서 생각한 것을 이룬 것이 바로 이 Coveda였다. 아이들의 창의성과 자유로운 발현을 싹부터 자르는 인도식 교육방식에 갑갑증을 느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던 제스프리 부부가 홈스쿨링을 하는 것보다는 비슷한 교육 철학을 가진 부모들이 모여서 같이 학교를 꾸려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큰 학교 옆의 부지를 빌려서 시작하게 된 것이 Coveda의 출발점이다.

 

작은 아이들 그룹과 큰 아이들 그룹으로 나누어진 이학교의 총 인원은 열 여섯 명. 그래도 상주하는 선생님은 교장역할인 비제이와 학부모 겸 선생님인 제스프리를 비롯하여 일곱 명이나 된다. 8명의 선생 중에서도 월급을 받는 선생은 4명밖에 없다. 그 외에도 홈스쿨링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는 학교와 학부모의 생각에 맞추어 학부도들도 각자 자기가 가진 능력껏 아이들과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나의 요가 선생님이기도 한 (레아가 짝사랑하는)모지브의 엄마 미낙시는 아이들에게 요가를 가르치고 역시 건축가인 오망의 아빠 지테시는 아이들에게 설치미술을 가르치고 또 히테시의 엄마는 수학을 가르친다. 나도 가끔은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텃밭을 만들거나 한국 음식 강좌를 해주기도 한다.(엉터리지만 아무도 모르니까...들키지 않는다^^)

 

대체로 부모들이 배운 사람들이 많고 경제력도 어느 정도 뒷받침되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열 여섯 명 아이들의 학비로는 선생 4명의 월급을 주기도 빠듯하다. 그래서 여기저기 아는 친구들에게 손을 벌리기도 하고 건축가인 제스프리가 번 돈을 학교에 부어가며 여태까지 Coveda를 꾸려 왔단다.

 

그런 이 학교는 아이들에겐 천국이다. 이 학교에서 아이들은 원숭이들처럼 나무와 지붕을 기어오르고 타잔처럼 나무에 길게 매달린 밧줄을 타며 흙을 짓이겨 그릇을 만들기도, 땅과 들에서 나는 온갖 것으로 온갖 것을 만들어 낸다. 큰 아이들은 같이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로 건물을 만들기도 하고 인형극이나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뭐..그보다 어린 아이들은 더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며 놀고 가끔은 공부도 한다. 아이들의 관계와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더 없이 친밀하고 편안하다는 것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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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란콩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에게도 이런 어린시절이 있었다면...우린 여기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ㅎㅎ 궁금하군.

    2010/04/18 08:29


너무 여러 번 작별을 하다보니 내 뿌리는 말라 붙었고
 나는 땅이 아닌 내 기억속에다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사벨 아엔데의 자서전 "내가 발명한 나라"




지난 겨울은 바닷가에서 보냈다...찬디가르에서 2박 3일을 덜컹거리는 2등칸 기차를 타고
12월의 축축한 안개 속을 달리고 달려서 도착한 곳이 뿌리,
뿌리는 태양의 나라 오리싸 주에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시끄럽고 여행 좋아하는 뱅갈리 가족들이 세간 살이를 기차에 싣고 도착해
이 바닷가 마을은 한동안 장사진을 이룬다. 이곳은 오랫동안  세상과 등지고 조용히 대마나 피우며 사는 서양 늙은 히피들이 장기 투숙을 하는 곳으로 유명한 조용한 바닷가였다고들 한다.  그 한편으로는 하루에 두어번씩 배가 가라앉을 만큼 많은 생선을 싣은 어선들이 배를 부려놓는 더럽고 꾀죄죄한 항구가 있다.

우리는 아침에 눈 뜨면 바닷가로 나가곤 했다. 주로 배 나온 중년부부와 아이들로 이루어진 시끄러운  뱅갈리 관광객과 외로운 늙은 히피들, 많지 않은 외국인 여행자들과 차이파는 상인들, 아침에 들어온 어선과 뱃사람들로 이루어진  바닷가는 언제나 흥성거렸다. 파도는 안개 속에서 더 목청이 높았고 아이들은 아침 안개 속에서 입술이 파래서도 뛰어 다녔다.
그리고...안개가 걷히면 어선에서 갓잡아온 은갈치는 해를 받아서 기적처럼 빛났고
뱃사람들은 악다구니를 써대며 생선을 그물에서 떼내고 저울에 재고 촘촘히 나누어 어디론가 이고 사라졌다. 해변에 지천인 개들도 생선 바구니를 따라 분주하게 이동하고
우리는 게으르게 풍경을 바라보며 아침의 뜨거운 차이를 마셨다...
이렇게 잡아온 갈치와 게와 같은 생선들이 멀리 한국에까지 수출된다고 한다. 저 먼 히말라야 발치에서 며칠을 허위허위 달려온 우리와 먼 바다를 헤엄치다 영문모르고 잡혀온 갈치가 한국으로 다시 실려가지전 느닷없이 영문없이 이 지저분하고 흥성거리는 미지의 항구에서 잠깐 조우를 하는 셈이다....

이곳에 2주가 넘게 지내는 동안 레아는 언제나 그랬듯이  다시 길 위의 친구들을 여럿 사귀었다.
과거와 미래없이 현재의 짧은 시간동안 만나서 온몸으로 만나서 사귀고 헤어지는 친구들...
그 중에는 아빠가 캘커타 생선공장으로 일하러 나가고 없이
젊은 엄마와 외할머니 집에서 사는 두살박이 아이 소니야가 있었다.
만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서스럼없이 레아를 따르고 좋아해서
레아는 눈만뜨면 소니야의 흙 집으로 달려가 종일 놀다오곤 했다.

레아와 친구가 되어 주었던 아직 말도 못떼는 두살박이 소니야



그리고 크리스마스 날 자질구레한 문구와 스티커등을 크리스마스 트리밑에 숨겨놓고
레아를 감동시켰던 숙소의 장기 투숙자인 영국인 아줌마 크리스틴,
호주의 유명한 일간지 기자이기도 했던 크리스틴은 남편과 이혼하고
 인도의 외딴 바닷가에서 몇 년째 마음의 병을 쓰다듬고 있다는데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많아서 아이들과 개를 유달리 좋아했다. 
그래서 크리스틴이 혼자쓰는 별채 앞에는 언제나 오갈데없는 길거리의 개들이 낳은
새끼 몇이 나른하게 해바라기를 하거나 아줌마가 준비해 놓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 숙소 앞으로는 짚으로 얼개설개  엵은 어촌의 가난한 집들이 바닷가로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아이들의 노는 소리, 개짖는 소리, 여자들끼리 소리치며 싸우는 소리로 언제나
아침부터 밤까지 시끄러웠다...그리고 그 위로 마을을 덮치고도 남을 거대한 파도 소리가
 밤이면 언제나 마을을 가득히 채웠다가 멀어지곤 했다....


안개로 가득차는 매일 아침마다 어부들은 어선위로 가득 물것들을 걷어 올리고



우리가 이 주 넘게 지냈던 독앤덕이라는 웃기는 이름의 숙소 주인 핀두는 하루종일 대마초에 절어 지내는 젊은 건달이었다.
 하지만  스무살이 넘게 연상이었지만 병에 걸려 죽은 부인을 잊지 못해
재혼도 하지 않고 사는 순정파에다  손님이 방값을 깍아달라고 하면 마음이 약해져서 달라는 값에 방을 주고마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이기도 햇다.
 그런 대마쟁이 핀두가 외로운 여행자들을 위해 준비해주었던 크리스마스의 저녁밥은
유난히 따뜻하고 정겨웠었다.
 숙소의 모든 이들이 가난한 모닥불 주위에 길잃은 개들과 나란히 붙어 앉아
한잔씩 싸구려 밀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심심해진 레아는 내 무릎에,
개는 제 어미의 품에 머리를 기대고 모두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고요하고 거룩했던  밤...그 밤을 새고 뿌리바닷가를 떠나올 때는
 내 마음의 뿌리가 어디 바닷가 마을 한 웅큼 똥무더기처럼 오롯하게
놓여져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으니..어쩌면 지금쯤은 앉은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그 태양이 넘치는 바닷가에서 혼자 무럭무럭 커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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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처구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왜 사진 업로드가 안되고 있남?

    2009/01/19 23:15
  2. nitya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잃어버렸던 시간들을 다시 만나서

    2010/03/29 20:35
  3. 노란콩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시간을 가졌었구나. 저 아저씨가 알군인가해서 깜딱 놀랐스...^^ 블로그 주소 바뀌었어. 전엣것이 좀 문제가 있어서...호구지책 블로그. norankong.com

    2010/04/18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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